머무는 빛, 세 겹의 파장
2026. 9. 4 — 9. 27

빛이 회화 안에서 어떻게 머무는지를 세 사람의 그림으로 살피는 전시입니다. 지용선의 표면에는 빛이 쌓이고, 천혜원의 선 사이에서는 굴절하며, 이근화의 화면에서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남습니다. 대구·경북에서 오래 작업해 온 세 작가입니다. 기획은 독립기획자 황성욱.






빛은 언제나 화면 위에 도착하지만, 모든 회화에서 다른 방식으로 머물고 있다. 어떤 빛은 두터운 표면의 결에 스며들어 물질의 깊이를 드러내고, 어떤 빛은 흔들리는 선 사이를 지나며 도시와 내면의 진폭을 만든다. 또 어떤 빛은 단아한 구조 안에 고요히 머물며, 물감과 시간, 행위와 우연이 잠시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보여준다. 「머무는 빛, 세 겹의 파장」은 이처럼 회화 안에서 빛이 머무는 서로 다른 방식을 세 명의 작가를 통해 살피는 전시다.
빛은 단순한 시각적 현상이 아니라 전자기파로서 서로 다른 파장과 진동수에 따라 색과 에너지의 성질이 달라진다. 짧은 파장은 높은 에너지를 지니고, 긴 파장은 보다 느리고 넓은 진동의 형태로 퍼져나간다. 회화는 이 보이지 않는 파장의 구조를 지지체와 안료라는 물질 위에 번역하는 장치처럼 작동시킨다. 안료의 입자, 표면의 거칠기, 빛의 반사와 흡수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파장을 변형시키며, 우리는 동일한 빛을 전혀 다른 감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물리적 조건이 회화 언어와 맞닿는 지점을 세 작가의 작업을 통해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온 지용선, 천혜원, 이근화의 회화를 한 공간에 배치한다. 작가의 병렬적 배치가 아니라, 추상회화가 감각의 깊이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탐색하는 장이다. 세 작가의 작업은 각기 다른 조형 언어를 통해 시선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고, 보는 행위 자체를 새롭게 조직한다. 전시는 이를 물성의 파장, 선의 파장, 상태의 파장이라는 세 개의 감각 구조로 제시한다.
지용선의 회화에서 빛은 표면 위에 축적된다. 빛은 표면에 닿는 순간 일부는 반사되고 일부는 흡수되며, 그 과정은 재료의 밀도와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 그의 작업에서 ‘결’은 단순한 질감이 아니라 반사와 흡수의 반복이 축적된 시간의 구조다. 표면은 색과 물질이 지나간 흔적을 품고 있으며, 관객은 이를 즉각적으로 읽기보다 천천히 더듬듯 경험하게 된다. 거리와 각도, 조명의 변화에 따라 결은 끊임없이 다른 표정을 드러내고, 화면은 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빛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장으로 확장된다. 지용선의 물성은 관객에게 느린 시간을 요구하며, 그 느림 속에서 회화의 표면은 하나의 깊은 지형으로 열린다.
천혜원의 회화에서 빛은 선의 리듬을 따라 이동한다. 빛은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지니며 경계에서 굴절과 회절을 통해 방향을 바꾼다. 그녀의 도시는 재현된 외형적 풍경이 아니라, 선의 운동을 통해 구성되는 감각적 구조다. 겹치고 긁히며 이어지는 선들은 도시의 형상을 만들면서 동시에 그 안에 축적된 감정의 진동을 드러낸다. 선은 윤곽이 아니라 파동이며, 도시와 인간 내면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감각의 흔적이다. 도시의 형상은 고정되지 않고, 시간과 기억, 감정의 흐름 속에서 계속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천혜원의 선은 도시를 매개로 내면의 박동을 드러내며, 화면 전체를 하나의 정동적 장으로 확장한다.
이근화의 회화에서 빛은 상태로 머문다. 빛은 관측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전환되며, 그 이전에는 다양한 가능성의 장 안에 존재한다. 그의 화면은 완결된 이미지를 제시하기보다, 물감과 시간, 행위와 우연이 잠정적으로 관계 맺는 과정을 드러낸다. 반복되는 구조와 절제된 화면 안에서 번짐과 침전, 농도의 변화와 가장자리의 떨림이 조용히 발생한다. 작가는 이를 통제하기보다 재료가 스스로 흐르고 스며들며 마르는 시간을 받아들인다. 그 결과 화면은 고정된 형태로 닫히지 않고, 여전히 변화 가능성을 품은 상태로 남는다. 덜어냄과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관객의 시선이 머물 수 있는 확률적 여지를 형성한다.
세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지만, 모두 빛이 회화 안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괴테가 색을 빛과 어둠이 만나는 경계에서 생겨나는 현상으로 보았듯이, 이 전시에서 빛은 홀로 빛나지 않고 표면과 선, 시간과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서 비로소 감각의 형태를 얻는다. 지용선의 물성은 빛을 붙잡아 표면의 깊이로 가라앉히고, 천혜원의 선은 빛이 지나가는 경계를 흔들며 도시와 내면의 진동을 드러낸다. 이근화의 작업은 물감이 스미고 마르고 멈추는 흐름 속에서 빛을 확정된 이미지가 아닌, 아직 열려 있는 가능성의 장으로 남긴다. 소개하는 세 작가의 회화는 빛을 지각 자체를 움직이는 물질로 보았고, 빛을 설명의 배경으로 두지 않고 있다. 빛은 작품의 내부에서 일어난다. 결 위에 머물고, 선 사이에서 굴절하며, 색의 농도와 번짐 속에서 잠시 균형을 이룬다. 관객은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무엇을 보고 있는지보다, 보는 일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먼저 감각하게 된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색채 공간이 관객의 이동에 따라 도시의 풍경을 서로 다른 색의 층으로 바꾸듯,1 「머무는 빛, 세 겹의 파장」에서 회화는 고정된 이미지로 전시되지 않는다. 관객이 한 걸음 다가서거나 물러서는 순간, 표면은 다른 깊이를 드러내고 선은 새로운 방향으로 떨리며 화면의 상태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이 변화 속에서 물성의 파장과 선의 파장, 상태의 파장은 서로를 비추고 어긋나며 하나의 조용한 공명장을 만든다.
이 전시는 회화가 빛을 어떻게 붙잡고, 지연시키며, 관객의 감각 안에서 다시 발생시키는지를 감각할 수 있는 자리다. 관객은 “무엇일까?”라는 질문 대신, 빛이 머무는 시간과 표면이 반응하는 방식, 선과 색과 흐름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진동을 느끼며 따라갈 수 있다. 그 순간 회화는 이미지에서 하나의 장소로 바뀐다. 오래 바라볼수록 다른 층위를 열어 보이는 장소, 조용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각의 장소로 남는다.
* 〈무지개 파노라마(Your rainbow panorama)〉: 덴마크 아로스(ARoS) 미술관 옥상에 설치된 원형 유리 보행로 설치 작품으로, 빨강부터 보라까지 무지개 스펙트럼 필터 유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관객이 원형 통로를 따라 걸어 이동할 때마다 도심 전체의 풍경이 서로 다른 색의 층으로 연속해서 바뀌며 관찰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