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at light hits the sky
2023. 12. 12 — 2024. 1. 7 · 종료

옻칠 작가가 인조모(人造毛)와 데님, 종이 사전을 화면에 끌어들인 전시입니다. 한국 전통 목가구인 반닫이 형태를 빌려 안과 밖 두 면을 가진 그림을 만들었고, 그래서 작품은 평면도 입체도 아닌 것이 됩니다. 제목은 영화 〈THE BATMAN〉의 대사에서 빌렸습니다 — 작가의 화면에 박쥐가 자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122 × 160 cm

122 × 160 cm








사진 ⓒ 고정균
2023년 12월, 한 해를 마감하며 테오화랑은 정광복 개인전 《When that light hits the sky》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정광복은 옻칠이라는 재료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인 이후, 가히 분투라 할 만한 시간을 보내온 작가이다. 그것은 몸의 분투이자 정신의 분투로서, 고유의 지향성과 운동성을 갖는, 결코 온전히 길들여지지 않을 사물 존재에 인간의 몸을 맞세우는 시간이자 끊임없이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각을 이루려 했던 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검고 깊은 밤하늘을 향해 한 줄기 빛을 쏘아 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번 전시는 현재에 이르는 작가의 시간을 응축하여 선보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Lacquer Meta Human series〉, 〈Bible series〉 등 올해의 신작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대표 작업들이 함께 배치된 이번 전시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되는 것은 옻칠화 장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재료 및 형태의 대담한 적용이 이루어진 점과 20여 년의 작업 기간을 통과해온 작가의 무르익은 역량이 중견 작가로서 만개한 한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Lacquer Meta Human series〉 등 신작이 보여주는 바, 전시장 벽면에서 크고 작은 동물들을 마주하는 듯한 전면적인 인조모(人造毛)의 사용이나 데님 소재의 적용, 종이 사전의 콜라주 등은 옻칠 회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기존 작업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꾀한 것이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지금까지 작가의 작업을 추동하고 견인해 왔던 것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예(藝)와 기(技) 등 대립되는 두 항을 놓고 사유함으로써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조화로운 융합과 혁신을 향한 의지였다. 이는 현대의 시간을 호흡하는 옻칠화 작가로서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신작들은 그러한 이항 대립의 세계에서 어느만큼 자유롭게 놓여나 또 다른 문 앞에 서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점은 작가의 작업이 기존의 개념과 방식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대미술 작업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한편으로 무르익은 작가적 역량은 작업의 다양성과 전체적인 조형미는 물론, 작업의 세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근래의 작업에서 한국의 전통 목가구인 반닫이 형태를 차용함으로써 안과 밖, 두 면의 회화를 창안하였으며, 평면과 입체의 어느 쪽으로도 지칭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형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반닫이 형태는 작가가 초기부터 구현해온, 상징적, 실제적 차원에서의 ‘열림’의 개념을 이어가게 해주는 장치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적 창안과 함께 무엇보다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전시장에 가득한, 물질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끌어올려진 듯한 옻칠화 고유의 색과 빛이다. 한국 현대 옻칠화가 보여주는 도약의 한 현장을 꼼꼼히, 즐겁게 감상하시길 희망한다.
* 전시의 제목은 영화 〈THE BATMAN〉(2022)에서의 주인공의 대사를 차용한 것임을 밝힌다. 정광복 작가의 옻칠화 작업에 박쥐 형상이 주요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배트맨’과 작가의 작업은 접합점을 갖는다. 그러나 본 전시의 제목으로서 이 대사를 제시하는 맥락은 영화의 해당 내용과 그대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의 ‘빛(light)’은 배트맨을 긴급히 호출하고자 쏘아 올리는 서치라이트(bat signa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