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2
2023. 9. 1 — 10. 1 · 종료

한지에 먹으로 점을 하나 찍고, 그 옆에 또 하나를 찍는 일에서 시작하는 작업입니다. 점이 번져 서로 닿고 어긋나면서 파도 같은 일렁임이 됩니다. 작품 제목이 대개 연-월-일-시각의 숫자인 것은 그것이 그날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전시 한쪽에는 완성작들을 포장한 채 쌓아둔 설치 작품 〈neglect〉가 놓였습니다.

140 × 120 cm

각 116.8 × 91 cm







사진 ⓒ 고정균
2023년 9월, 테오화랑에서는 신상원(Sangwon Shin)의 개인전 《20230902》로 하반기 전시의 문을 연다. 이번 전시는 2019년 이래 작가가 지속적으로 작업해 오고 있는 콩테 드로잉 연작 15점과 단일 설치 작품 〈neglect〉로 구성되었다.
A Section
신상원의 작업에서 먼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반복의 수행성이다. 한지와 먹(홍성지와 숙묵)을 기본 재료로 삼는 작가는 차분히 하나의 점을 찍는 일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점 옆에 다시 점을 찍는다. 먹의 번짐에 따라 각각의 점은 서로 닿고, 가장자리의 일부는 포개진다. 또 접점을 갖지 못한 점들 사이로는 틈이 생기기도 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흡사 파도와도 같은 일렁임의 형상들을 이루어 간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표면으로 표출되어 왜곡되기 쉬운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는 가운데, 반복되는 신체 리듬이 만들어내는 우연성의 결과물 사이로 새로이 자리 잡는 진실한 감정과 의식들을 확인한다. 작가에게서 이러한 작업 과정은 하루를 살아가는, 또는 전 생애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개념적으로 연결된다. 작가는 이를 삶의 기록이자 흐르는 시간 속에서의 존재의 현존으로 인식한다. 이는 그의 작품들의 상당수가 연-월-일-시간의 숫자를 제목으로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상원의 작업에 정제되고 절제된 반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관람자는 그의 작품에서 자유분방하게 그어지고 연결되는 콩테의 힘찬 선들과 뭉개지고 흩뿌려진 검은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때 표현된 대상이 일상의 사물이거나 사건이거나 추상적 형태이거나 간에 그의 작업이 절제된 규율성과 즉흥성이라는 양면적 형태, 즉 이중적 지향을 갖는 점은 중요한 사실이다.
다음으로, 신상원의 작업이 보여주는 본질적 색채로서 ‘현(玄)색’의 구현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서예로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던 작가적 이력은 그에게 먹의 색이자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색인 현(玄)색에 대한 깊은 인식과 감각을 길러주었다. 2023년의 최근작들을 포함하여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일련의 연작은 현(玄)색의 깊이감과 세련미를 회화의 유산으로 품은 작가적 개성을 오롯하게 보여주며, 표층의 콩테 드로잉으로부터 배면에 이르기까지 관람자의 시선을 깊숙이 이끈다.
B Section
[장소] 희미했던, 당연함과 당연치 않음의 간극이 생겨나는 곳신상원, 〈neglect〉 작가노트 중에서
근래 들어 신상원의 작업은 평면 회화를 넘어서 입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시도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20230902》 전시에서는 작가의 실제 완성작들이 포장되거나, 포장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적재된 설치 작품 〈neglect〉가 소개된다. 모든 작품은 앞면과 뒷면을 갖는다. 〈neglect〉는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한편으로, 작업의 앞면과 뒷면, 전진과 멈춤, 완성과 미완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작가적 질문들의 적재를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 노트가 얘기하는 바, 당연함과 당연치 않음 사이의 ‘간극’은 오늘의 우리를 새롭게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도 할 것이다.